• 2021/12/16 자기야, 부탁이야. 기다려 줘. 3년만, 제발 3년만. 평생 잘할게,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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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2/16 나는 모든 사라지는 것 앞에서 비명을 질렀어. 망가지고 사라지고 늙고 낡고 분해되고 죽고 멸망해 가는 것들 앞에서. 단 한 번에 어처구니없이 일어버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것들을 애도했어.
    • 2021/12/16 내가 여기에 있어.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 그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자제하지 못했을 거야. 그러니까 당신이 나를 살린 거야. 당신이 지금 어느 시대에 있든, 이미 죽었든, 살았든, 무한의 별 무리를 여행하고 있든.
    • 2021/12/16 나는 나이를 먹었어. 하루에 하루씩. 한 달에 한 달씩. 한 해에 한 살씩, 시간을 몸에 쌓으며 살았어. 그러니까 나는 당신에게 어울리는 사람이야. 10년 전보다 더 당신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되었어. 몇백 년 전보다 더 괜찮은 사람이 되었어. 내일은 하루만큼 더 어울리는 사람이 될 거야. 내년에는 또 한 해만큼 그렇게 될 거야.
  • 2021/10/02 네가 말한 것 때문에 여기 데려온 건 아니야. 너를 겁주거나 고립시키려고 데려온 게 아니라고. 내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널 여기 데려온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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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10/02 난 너처럼 강하지 않아. 그런 적 없어. 내가 원하는 게 뭐냐고? 네가 이 배의 노를 저어 육지로 가길 원해. 이곳을 떠나서 다신 뒤도 돌아보지 마. 근데 네가 안 그럴 거란 걸 알았어. 네가 직접 보지 않으면 믿지 않을 것도 알았지. 네가 도망가면 좋겠어. 하지만 노를 저어 돌아갈 거란 걸 알아. 사람들을 살리려고 무슨 일이든 하겠지.  이런 모습을 보게 해서 미안해.
  • 2021/09/30 나는 안 될까. 처음부터 자기소개를 제대로 했으면 좋았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게 더 나은 방법일 것 같았어. 그래도 나는 안 될까. 너를 직접 만나려고 2만 광년을 왔어. 내 별과 모두와 모든 것과 자유 여행권을 버리고. 그걸 너에게 이해해달라거나 보상해달라고 요구하는 건 아냐. 그냥 고려해달라는 거야. 너한테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 그냥 내 바람을 말하는 거야. 필요할 만큼 생각해봐도 좋아. 기다릴게. 사실 지금 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난 괜찮은 것 같아. 우주가 아무리 넓어도 직접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야기들이 있으니까. 이거면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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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9/29 멈춰 서서 눈을 감는다. 놀랍게도 첫 번째부터 여덟 번째까지 죄다 얼굴이 흐릿했다. 열심히 떠올리려 해도 안 된다. 몇 명한테서는 이름도 들었는데 그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눈을 뜨자 차가운 빗줄기 사이로 반짝거리는 금빛 혜성이 보였다. 투명 비닐 우산을 쓴 금발 언니였다. "저기요!" 나는 금발 언니에게로 뛰었다. 검은색 항공 점퍼를 입은 얄팍한 등이 깔끔하게 턴을 하며 이쪽을 본다. 이 사람의 얼굴은 1년 동안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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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9/29 "그럼 안 가면 되지." "무리예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 마루토미에서 점점 멀어진다. 여자는 다시 입을 꾹 다문 채 조금도 망설임이 없는 차선 변경과 핸들링 솜씨로 차를 몰았다. "가기 싫지만, 가야 돼요. 다른 사람들도 다들 여기에서 애쓰고 있으니까. 바로잡아야죠. 가족의 일원으로서, 동네의 일원으로서…… 돌아가야 해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 동네와는 정반대 방향으로 계속해서 달린다.
  • 2021/09/07 가타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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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9/07 난 30년 산댔지만 벌써 지났어요. 가능한지 아닌지의 운명을 정하는 건 자신의 몫이잖아요?
    • 2021/09/07 넌 알고 싶겠지. 난 되돌아갈 힘을 남겨두지 않아서 널 이기는 거야.
    • 2021/09/07 행복할 수 없는 곳이지만 떠나기 싫은 마음이 드는 건 왜일까? 몸속의 모든 원소도 우주의 일부라고들 한다. 어쩌면 떠나는 게 아니라 고향으로 돌아가는 걸지도 모른다.
  • 2021/07/22 여기서 나가면 달에게 내 안부를 전해줘. 매일 달을 그리며 살고 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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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7/22 넌 네가 똑똑하다고 생각해? 하지만 나무들은 진정한 흡혈귀라고, 친구. 먼지로부터 자라고, 너의 피를 마시지.
  • 2021/07/20 너는 여기에 있어야지. 너는, 너만은. 내가 뭘 위해 이 끔찍한 곳에 남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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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4/07 나는 사실 당신이 생각한 것의 열 배만큼 돈을 들이고 있었어. 그러니까 나는 당신이 생각한 것의 열 배만큼 당신에게 애정이 있었던 거지. 나는 원래 애정을 그렇게 계산해. 나에 관하여 꼭 알아야 할 부분이지. 그러니 당신이 그걸 알아야 해. 알아줘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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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4/07 넌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마. 그냥 무력하게 내가 만든 왕국 안에 살아. 그런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증오보다 강렬한 감정이 있나. 이건 도대체 무슨 감정인가. 더 큰 증오일까.
    • 2021/04/07 사랑만 하지 않으면 된다. 깊이 사랑에 빠져서 자신을 떠나겠다고 마음 먹지만 않으면 어떻게든 용서할 수 있었다.
    • 2021/04/07 눈꼬리가 휘어지도록 사랑스럽게 웃는 아내를 보자 윈터의 머릿속에서 거대한 종이 우렁차게 울려 댔다. 이게 뭐지? 도대체 아내는 지금 뭘 이렇게 마음에 들어하는 거지?  그리고 이 종소리는 갑자기 어디서 들리는 건지.......
    • 2021/04/07 "누가 공주님 아니랄까 봐 까다로우시긴." "공주님이라고 하지 말아요." "그건 안 돼. 애칭이라." "직책이에요. 이제 아니니까 부르지 말라는 거예요."
    • 2021/04/25 사랑을 하면 모든 것이 나아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죽을 것만 같을 때가 있었다.
  • 2021/03/18 물은 반드시 위에서 아래로 흐르기 마련이었다. 순리란 그런 것이었다. 아무리 먼 길을 돌아가더라도, 종착점은 언제나 옳은 길일 거라는 믿음은 오랫동안 정언을 지탱해 준 유일한 신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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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03/18 그러나 지금 자신의 마음은 이성적인 이해 바깥에 존재했다.